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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특급 - [유일한] 어느날 갑자기 1권 - 5. 먹는 자와 먹히는 자 1부
먹는 자와 먹히는 자 1부
인간은 그 엄청난 식욕으로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먹어치워 왔다.
같은 인간까지도.
마쓰다의 낙서 중에서
“일한이 오빠, 이제까지 먹어 본 것 중에서
가장 희귀한 것이 뭐였어요?”
나는 오랫만에 서클 룸을 찾아갔다가 후배
들에게 붙들여 술을 사 주게 되었다. 잡담과
함께 술이 돌고 있는데 앞자리에 앉은 지영이
불쑥 물었다.
“글쎄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아니, 진석이가 개고기를 먹어 봤다는 거예
요. 오빠도 먹어 봤어요?”
“개고기는 나도 먹어 봤지. 야 그렇다고 야
만인처럼 쳐다보지 마라. 우리가 먹는 개는 애
완용이 아니라 식용이니까. 소나 돼지처럼 말야.”
“그래! 개고기 갖고 뭘 그러냐. 난 어렸을 때
뱀도 먹어 봤는데.”
옆자리의 후배가 다른 이야기를 나누다 말
고 뱀처럼 혀를 낼름거리면서 대화에 끼어들
었다.
“오빠는요?”
지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나에게 다시 질문
을 던졌다.
“뭐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알고 먹은 것
중에는 악어 고기가 아닐까?”
“악어요? 어디서요?”
“작년에 캐나다에 갔을 때 먹어 봤어. 토론
토에 있는 어느 작은 바에서 술안주로 팔고 있
더라고. 이름이‘크로크다일 너겟’이었어.”
“맛은 어떤데요?”
“닭고기하고 비슷해.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악어도 미국에서 수입한 식용 악어래.”
“오빠도 뱀 고기나 쥐 고기도 먹어봤어요?”
지영이는 이런 주제가 재미있는지 온갖 인
상을 다 써가면서도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다른 후배들도 하나, 둘 나누던 이야기를 멈추
고 귀를 기울였다.
“먹어 보지는 않았어.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쥐 고기를 먹는 나라가 50여 개 국도 넘는다더
라. 또 15개 나라에서는 바퀴벌레도 먹는다는
거야. 인간은 못 먹는 게 없는 전천후 위장을
지니고 있는 셈이지.”
“정말 그래요. 중국 요리에 사용되는 재료들
을 보면 없는 게 없더라고요.”
한때 집에서 중국집을 했다는 후배 하나가
내 의견에 동조했다.
“중국 요리하니까 생각하는데 말야, 너희들
중국 요리에서 가장 귀하게 치는 것이 뭔 줄
알아? 바로 모기 눈알이야.”
“우우우우“
믿기지 않는지 후배들 중에서 몇이 늑대처
럼 허공을 쳐다보며 야유를 했다.
“진짜야! 닉슨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도 이
요리를 대접받았다고 하더라고. 진짜 모기 눈
알로 만든.”
“설마 요리야 그렇다 하더라도 그 재료를
어디서 구해요? 모기를 잡아 하나씩 눈을 빼
내려면 굉장히 오래 걸릴 텐데.”
“그런 무식한 방법으로 언제 요리할 만큼의
재료를 구하겠냐? 그런 게 아니고 모기를 잡
아먹고 사는 박쥐가 있는데 모기 눈알은 소화
가 안 되고 그냥 배설된대나 봐. 그래서 박쥐
들이 사는 동굴에서 배설물을 수거해 와 그걸
로 요리를 만든대. 그러니까 박쥐똥을 가지고
최고급 요리를 만드는 셈이지.”
“형, 사람 고기로 음식을 만들면 맛이 어떤
지 알아요?”
한쪽 구석진 자리에서 이상한 질문이 날아
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철규였다. 서클 사람
들하고도 잘 어울리지 않는 내성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후배였다. 다른 사람들이 이런 질
문을 던졌다면 그럴 수도 있을 텐데 말수도 별
로 없는 놈이 이상한 질문을 던지니 순간적으
로 섬칫한 기분이 들었다.
지영이 끔찍하다는 듯이 철규에게 핀잔을331
주었으나, 철규의 눈은 오히려 이상한 빛을 띠
었다.
“글쎄다? 나도 안 먹어봐서 왜 <얼라이브>
라는 영화를 보고 나니 갑자기 궁금해지던?”
철규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술잔만 만
지작거렸다. <얼라이브>를 본 후배들은 저마
다 영화에 대해서 한마디씩 떠들어댔다.
“하여튼 인육(人肉)에 대해선 많은 얘기가
있지. 개 고기가 맛있고, 정력에 좋다고 하잖
아. 그 이유는 개가 잡식성이어서 그렇대. 그
러면 생각해 봐. 지구상에서 가장 잡식성인 동
물이 뭐겠니? 바로 인간이야. 그래서 인간 고
기가 가장 맛있고, 영양가가 많다더라. 동물
중에서도 한번 인간 고기 맛을 본 동물들은 다
시 인간을 공격하기 마련이래. 인간을 먹어 본
상어들이 다시 인간을 공격하잖아? 벵골 호랑
이들도 그렇고. 그런 거 보면 인간 고기가 맛
있긴 맛있나 봐.”
“오빠, 그만해요.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지영이 몸서리를 치며 말했다. 하지만 다른
후배들은 더욱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 특히
철규는 심할 정도였다. 나는 하던 이야기를 마
저 이어나갔다.
“흔히들 식인(食人)의 풍습은 아프리카에만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
유럽, 미국, 중국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우리
나라에도 사람 고기를 먹어 왔어. 물론 아프리
카에서는 최근까지 그 풍습이 자행돼, 식인종
의 대륙이라는 악명을 얻게 되었지만 말야.
실제로 아프피카에서는 20세기 초만 하더라
도 인육 시장이 공공연히 열렸대. 주인이 노예
를 소나 돼지처럼 끌고 다니면서 부위 별로 짤
라 팔았다는 거야. 아프리카는 아직도 문명과
유리된 지역이 있어서 아직도 식인의 풍습이
자행되고 있을 지도 모르지.
하지만 식인의 풍습은 아프리카에서만 있었
던 것은 아냐. 너희들 <포카혼타스> 봤니? 미
국에서도 그 시대에는 식인 사건이 많이 발생
했어. 그 당시 개척민들은 농사에 실패한 해에
극심한 추위가 몰려 오면 자주 전멸할 위기에
직면하곤 했지. 인디언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실제로 다 죽었을 거야.
그 시절 굶주리다 미친 개척민들이 공공연
히 자기 가족들까지 먹어치웠다고 전해지지.
어느 기록을 보면 어떤 개척민은 밤에 자다 너
무 배고파 옆에 같이 지고 있던 부인을 먹어치
웠대. 더욱 끔찍한 것은 머리만 남기고 전부
먹은 다음에야 제정신이 들었다는 거야.
이 외에도 식인에 대한 이야기는 많잖아? 중
국에서는 지나가던 여행객을 잡아 죽여서 음
식으로 만들어 파는 가게들이 옛날부터 성행
했지. 물론 우리 나라도 예외는 아니야. 식인
이 가장 흔하게 행해지는 시기는 전쟁이나 혼
란기인데 우리나라는 수많은 전쟁을 겪었잖
아? 그러다 보니 자연 발생적으로 식인의 풍
습이 생긴 거야.
이런 이야기도 있잖아. 동물도 그렇듯이 사
람 역시 한번 사람 고기를 먹어 보면 그 맛을
못 잊어 다시 찾게 된다고. 옛날에 이런 사실
을 과장되게 그린 <커니발>이란 공포 영화가
있었지. 월남전에서 식인을 해 본 병사들이 고
향에 와서도 그 맛을 못 잊어 식인을 자행한다
는 내용이야. 2류 영화지만 흥미로웠던 점은
그 영화에서 식인은 전염성이 있는 것처럼 묘
사되어 있다는 거야. 어때, 으시시하지?”
이야기를 마쳤지만 후배들은 모두 못 들은
것을 들은 것처럼 씁쓰름한 표정들이었다. 안
주로 나온 쏘세지 무침에 젓가락을 가져 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의 창자가 연상되
는 모양이었다.
나는 처음 식인에 대한 질문을 던졌던 철규
를 바라보았다. 철규는 뭔가를 생각하며 의미
심장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서 자는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하지만 말야 음식은 우리 나라 음식이 제일
맛있고 다양해. 한식은 말할 것도 없고 인스턴
트로 음식까지 발달되어 있어. 라면만 하더라
도 그래. 사실 라면은 일본에서 개발된 거거
든. 그런데 일본의 라면 맛은 우리의 라면 맛
을 쫓아오질 못해. 일본에서는 말야, 라면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인스턴트 라면이 아니라.”
나는 있는 상식, 없는 상식을 모조리 동원해
서 가까스로 분위기를 바꾸는데 성공했다. 술
자리는 다시 왁자지껄해졌다. 나는 붙잡는 후
배들을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계산을 하고 나오려니 다른 사람들과 대화
도 나누지 않고 묵묵히 술만 마시는 철규가 내
심 마음에 걸렸다. 나는 지영을 불러서 철규와
이야기도 좀 하고 술도 좀 따라 주라고 당부한
뒤에 집으로 향했다.
방에 들어서니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두툼한
봉투가 눈에 띄었다. 일본에서 온 소포였다.
의아해 하면서 발신인을 찾아보았다. 윤석이
보낸 것이었다.
윤석이는 몇 달 동안 전혀 만난 적이 없었
다. 가끔씩 불쑥 전화를 걸어와 통화를 나눈
적이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전화가 걸려 온 것
도 두어 달 전이었다. 무슨 심령학회의 연구원
으로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일본에 간다
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윤철이 형이 죽은 뒤로 윤석은 심령학에 완
전히 빠져서 입을 열었다 하면 심령학에 관한
거였다. 우리의 생활과 관계 있는 거여서 들을
때는 재미있지만 듣고 나면 웬지 으시시했다.
나는 몇 번이나 심령학 공부 때려치우고 사법
고시나 다시 보라고 충고했지만 내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나는 소포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가 봉투를
찢었다. 선물이 아닐까 은근히 기대했는데 나
온 것은 일본어로 쓰여진 수첩 하나 하고 지저
분한 노트 한 권이 전부였다. 수첩을 무심코
넘겨 보니 윤석의 편지가 끼워져 있었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 일한에게
요즘은 뭘하고 있는지 궁금하구나. 졸업하
고 나서 뭘 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부호를 마침
표로 바꾸었는지도.
이 소포 받고 조금은 놀랐겠구나. 너에게 편
지를 쓰고 있는 이 곳은 동경의 작은 호텔이
야. 놀러 온 것이 아니라 우리 학회하고 자매
결연 맺은 일본의 심령학회에서 세미나가 있
어서 참석한 거야.
말만 세미나지, 서로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
주는 전혀 화기애애하지 못한 분위기야. 그런
데 이틀 전에 일본 측에서 흥미로운 사건을 들
려 주는 거였어. 동봉한 두 개의 수기와 관련
된 건데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이런 거야.
1994년 4월에 일본 전국을 떠들석하게 한
연쇄살인 사건이 있었어. 어느 한적한 시골에
서 개들을 키우는, 겉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한
마쓰다 다까히로하는 사람이 무려 12명을 죽
여 암매장을 한 거야. 그래서 일본 매스컴을
오르내리는 사이에‘애견가(愛犬家) 살인사
건’이라 이름이 붙여졌지.
마쓰다는 검거 도중에 자살했고 결국 경찰
은 정신 이상자의 소행으로 공식 발표하고 사
건을 종결짓기에 이르렀지.
하지만 경찰의 발표는 사실과는 달랐어. 거
기에는 감금당했던 여자 생존자가 한 명있었
고, 그 마쓰다란 살인자도 자살이 아닌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으로 보였어.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12명의 희생자가
평범한 살해를 당한 것이 아니라 먹혔다는 거
야. 개와 사람에 의해서. 그래서 경찰은 민심
의 동요를 막기 위해서 정신이상자에 의한 연
쇄 살인 사건으로 서둘러 발표한 거야.
떠들썩하던 일본 열도가 가라앉자 일본 경
찰은 비밀리에 심령학회에 이 사건을 의뢰한
거야. 심형학회는 경찰 측으로부터 숨겨 둔 수
기와 자료를 넘겨 받은 뒤에 나름대로 조사해
봤지만 아무런 성과도 못 거뒀대. 분명 뭔가
있긴 있는데 자신들의 힘으로는 밝힐 수가 없
었던 거지.
그러던 차에 세미나가 열리자 우리에게 도
움을 청한 거야. 내가 보낸 두 권의 수첩은 살
인자인 마쓰다 다까히로와 유일한 생존자인
아주사 요꼬라는 여자가 쓴 수기의 원본이야.
경찰이 수기를 회수하려고 해서 너에게 급
히 빼돌린 거야. 며칠 전에 아주사 요꼬라는
생존자의 주변 사람들 몇 명이 토막난 채 발견
되었거든.
경찰이 수기를 감춘 뒤에 다시 사건을 축소
하여 조기에 결말지으려는 것 같아 일본 심령
학회에서 수기를 나에게 맡긴 거야. 그 수기는
대단히 중요한 자료이니 내가 다시 연락을 보
낼 때까지 잘 간수하고 있기를 바래.
너 일본어 할 줄 알잖아. 한번 읽어 봐. 나는
대충 한번 훑어봤는데 감금한 자와 감금된 자,
아니 먹는 자와 먹히는 자의 심리 상태와 그
주변의 기괴한 현상이 잘 쓰여져 있더구나.
밤이 깊어서 이제 그만 자야겠다. 내일은 경
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아주사 요꼬를 만
나기로 했거든.
일이 끝나면 다음 주쯤 귀국하게 될 거야. 서
울 가면 연락하마.
수기를 잘 읽어 보고 조언해 주기 바란다.
동경에서 윤석이 쓴다.
나는 윤석의 편지를 읽고, 이상한 한기를 느
꼈다. 마치 윤석으로부터 운철 형과 미정이 누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처럼.
편지를 덮고서 나는 책상 맨 아래서랍에 만
지기도 께림칙한 노트 두 권을 서둘러 넣었다.
수기를 읽어 보기 바란다는 윤석의 요구를 무
시해 버릴 의도였다. 서랍을 닫고 컴퓨터 앞에
앉았지만 의식은 자꾸만 서랍으로 쏠렸다.
잠을 청하려고 침대에 누웠지만 마찬가지였
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불을 켜고 서랍에서
노트를 꺼냈다.
마쓰다 다까히로라고 쓰여진 허름한 노트에
는 붉은 것이 묻어 있었다. 핏자국 같았다. 안
을 대충 훑어보니 일기처럼 날짜 별로 쓰여져
있었다.
빨간 수첩을 살펴보았다. 겉장을 넘기자 사
진이 붙어 있었다. 그 밑에 정성들여 쓴‘아주
사 요꼬’라는 글씨가 보였다.
사진 속의 여자는 활짝 웃고 있었다. 덧니가
미소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는
이십대 중반으로 보였다. 미인이라기 보다는
무척이나 귀여운 여자였다. 이목구비가 작은
전형적인 일본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첩을 넘겨 보았다. 수기라기 보다는 낙서
같은 것이 어지럽게 적혀 있었다. 나는 읽기
위해서는 사전이 필요하는 것을 느꼈다. 생각
보다 어려운 말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나는 술에서 깨기 위해 샤워를 했다. 커피를
한 잔 타서 홀짝거리며 마쓰다의 허름한 노트
를 펼쳤다. 수기의 앞 부분은 개 사육일지였
다. 몇 장을 넘기니 검은 잉크에서 자주색 잉
크로 바뀌면서 일기 형식으로 쓰여져 있었다.
잉크 색이 고르지가 않아 자세히 들여다보
였다. 놀랍게도 자주색 잉크가 아니라 피였다.
노트 여기저기에 떨어져 마른 핏방울들이 드
문드문 보였다. 나는 수기를 읽기도 전에 술에
서 깨어나기 위해서 샤워를 할 필요가 없었다
는 사실을 알았다. 오히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술이라는 것을
나는 으시시해지는 공포를 느끼고는 일어나
서 창문을 닫았다.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노
트를 덮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었다.
하지만 내 손은 내 의사와는 반대로 노트를 끌
어당겼고 내 눈은 빠른 속도로 수기를 읽어 나
가고 있었다. 마쓰다 다까히로의 수기는 원래
개 사육일지였던 것을, 어느 날부터인가 일기
형식으로 바뀌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용 중간 중간에 가끔씩 윤석이의 메모도
보이기도 했다. 나는 윤석이가 표시해준 곳 부터
읽어내려갔다.
<마쓰다 다까히로의 수기>
# 11월 21일
그 놈이 내 주변을 맴돌고 있음을 느낀 것은
도베르만 세 마리가 들어 있는 개장에 먹이를
주러 들어갔을 때였다. 갑자기 개들이 사납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먹이를 가지고
들어가면 개들은 조용해지곤 했는데, 오늘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나는 낯선 사람이라도 있는가 해서 둘러보
았지만 인기척은 느낄 수 없었다. 개들을 진정
시킨 뒤에 먹이를 주려 하는데, 누군가 뒤에서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었다.
다시 살펴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나는 애
써 꺼림칙한 기분을 떨궈 버리고 집으로 들어
왔다.
밤이 되자, 개들은 다시 심하게 짖기 시작했
다. 나는 도둑이라도 들어왔나 해서 나가서 살
펴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도
베르만들이 있는 개장에서 '깨깽깨깽' 소리
가 들려 오더니 갑자기 잠잠해졌다.
나는 급히 그 개장으로 달려갔다. 세 마리
중 한 마리가 쓰러져 있고 두 마리 개들은 구
석에 쪼그리고 앉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이
었다. 평소에는 나 이외는 어떤 사람도 자기
우리에 들어오는 싫어하는 개들이었다. 겁이
라곤 전혀 모르던 용맹스러운 개들이어서 무
엇이 이들을 저토록 놀라게 했는지 쉽게 감이
오지 않았다.
일단 쓰러져 있는 개를 안아 보았다. 따뜻한
체온은 느껴졌으나 이미 죽어 있었다. 비싼 개
였기에 나의 슬픔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원
인을 살펴보았으나 외상은 전혀 없었다. 해부
해 봐야 알겠지만 인간처럼 무엇인가에 놀라
쇼크사한 것 같았다.
주위가 너무도 잠잠하여 갑자기 무섬증이
일었다. 5개의 개장에 있는 모든 개들이 일제
히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놈이 왔다고 확신했다. 그놈이 집안
어디에선가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음이 확
실했다. 나는 겁이 나 집에 들어가서 엽총을
꺼냈다. 장전을 한 다음에 문이란 문은 모조리
걸어잠궜다.
그러나 그놈은 여전히 창문 밖에서 나를 응
시하는 것 같았다. 커튼을 닫았지만 여전히 놈
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찬장에서 술을 꺼내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아 건 뒤에 방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술을 마셨다. 잠을 청하
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 11월 30일
그 놈이 결국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나는
소름 끼칠 정도로 빨간빛이 감도는 두 눈밖에
볼 수 없었다. 그 놈은 하루종일 내 주변을 맴
돌며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이었다. 미칠
것만 같았다. 특히 뒤에서 나를 쳐다볼 때의
그 소름끼치는 느낌이란.
나는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그 놈의 시선을
피해 집안으로 들어와 문을 모조리 잠갔다. 그
래도 불안해서 방으로 들어와 엽총을 옆에 끼
고, 두려움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바로 내 옆에 뭔가가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바로 그 놈이었다.
새빨간 눈동자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놀
란 나는 사정없이 그놈을 향해 총질을 했다.
그 놈은 전혀 놀라지도 않고 나를 더욱 뚫어지
게 쳐다보는 것이었다. 숨통이 막혀 오고 오금
이 저려 왔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술병을 놈
에게 던졌다.
엽총을 거꾸로 들고 휘두르다 보니 놈은 사
라지고 없었다. 무서웠다. 공포로 심장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사람이 그리웠다. 마을로 갈까도 생각해 봤
지만 트럭으로 빨리 가도 이십 분 거리라 엄두
가 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놈이 나를 습격
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빤했다.
갑자기 죽고 싶은 유혹이 들었지만 가까스
로 이겨냈다. 아, 정말이지 미칠 것만 같다.
# 11월 31일
더러운 마을 놈들!
그 놈들은 오늘 나를 무슨 괴물 취급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는 트럭을 몰고 마을
로 달려갔다. 마을에 도착하니 여느 때와 마찬
가지로 동네 꼬마 녀석들이 내 주변으로 몰려
와 나에게 이지메(柱: 일본사람들의 기이한
성향으로 집단이 어느 약한 개인이나 소수를
놀리거나, 심지어는 집단 폭행을 가하는 것.
청소년들 사이에서 가장 심하게 행해진다. 일
본 사람 기저에 깔려 있는 집단주의적 성향의
대표적인 예로써 소수에 대한 부정의 행위라
고도 볼 수 있다. 재일교포 학생들이 이 이지
메로 인한 스트레스로 자살하는 경우가 비일
비재하다.)를 가했다.
꼬마들의 행동은 같은 반 놈들이 가하던 이
지메를 연상시켰다. 그 놈들은 내가 약간 사팔
뜨기라고 매일 놀려 댔다. 가끔씩은 나에게 몰
매를 가하기도 했다. 그 새끼들 다시 만나면
죽여 버릴 텐데.
마을에서 나는 일단 식사를 하고 먹을 것들
을 산 뒤에, 내가 살 집이 없나 보러 다녔다.
그 놈이 있는 집으로는 다시 들어가기 싫었다.
복덕방을 여러 군데 들려보았지만, 한결같이
나를 보고는 집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곤 내
뒤에서 수군거리며 험담을 했다. 나를 마치 조
센징 취급 하듯이 하는 것이었다.
분노가 끓어올랐지만 하는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나는 신사에 들러 악귀를 내쫓는 부적을
하나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오니 모든 것이 일상적으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개들은 밥 달라고 아우성 치고,
집 안은 너무도 평화로워 보였다. 놈은 사라진
것 같았다.
나는 안도감 속에서 오후 시간을 흥겹게 보
낼 수 있었다. 개들이 오늘따라 무척이나 사랑
스럽게 보였다.
그러나, 놈이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하려는데 기분나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슬며시 눈을 떴더니 놈의 붉
은 두 눈이 보였다. 천장위에서 놈은 나를 핏
방울이 뚝뚝 떨어질 듯한 두 눈으로 나를 내려
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재빨리 일어나서 불을 켰다. 산사에서
산 부적을 재빨리 들어올렸지만 놈은 조금도
동요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놈은 부적을 두려워
하는 것이 아니라 부적을 비웃는 듯이 보였다.
한참 뒤에 스르르 사라져 버렸지만 다시 잠
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술을 마시며 이 글을 쓰
고 있는 도중에도 놈의 시선이 느껴진다. 나의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는 놈의 시뻘건 두 눈동
자가.
돌아보고 싶지만 가까스로 참는다. 아, 차라
리 아무것도 못 보는 맹인이었으면.
눈을 빼 버릴까? 아냐! 암흑 속에서 살고 싶
지는 않아.
혹시 내가 미친 것이 아닐까?
# 12월 8일
드디어 그 놈이 원하는 것을 알았다. 그 놈
은 아무 이유 없이 나를 괴롭혀 온 것은 아니
었다. 그 놈은 처음부터 목적을 지니고 있었
다. 나는 오늘 처음으로 그 사실을 알았다.
놈이 밤에 다시 나타났을 때 나는 놈의 시뻘
건 두 눈을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더 이상 달
아날 곳이 없다는 것을 절감했기에 놈의 두 눈
을 노려보며, 도대체 나에게 원하는 것이 뭐냐
고 소리쳤다.
놈은 기뿐게 나를 쏘아보았다. 그 놈의 시뻘
건 두 눈을 보고 있으니 한순간, 머릿속을 스
치는 단어가 있었다.
피! 바로 놈이 원하는 건 피였다.
내가‘피?’하고 소리치자 놈의 두 눈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리고는 스르르 사라졌다.
집요한 놈! 나는 놈이 사라지고 난 뒤에 한
가지 사실을 알았다. 놈의 추적으로부터 결코
달아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좋다! 놈이 원하는 만큼 피를 구해다 주마!
그 끔찍한 시선을 나에게서 거둬만 준다면. 잠
자는 나의 머리맡에서 밤새 노려보지만 않는
다면.
아, 난 해방될 수 있다. 놈의 시선에서.
# 12월 13일
내가 그 놈이 원하는 것을 알아차린 뒤부터
놈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오랫만에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다. 놈이 있는 세상은
지옥이지만 놈이 없는 세상은 바로 천국이었
다. 나는 천국에서 며칠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어제 저녁에 놈이 다시 나타났다. 저
녁을 먹으려는데 놈이 허공에서 나를 노려보
았다. 갑자기 식욕이 뚝 떨어졌다.
놈은 잠자리까지 쫓아와 끈덕지게 무언가를
요구했다. 내가 놈의 요구 조건을 받아들이기
로 결심하자 놈은 내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모
습을 감추었다.
나쁜 자식!
나는 놈이 사라진 허공을 한동안 노려보다
가 잠을 청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거래처인
애완동물 가게에서 전화가 온 것이었다. 크리
스마스가 다가와 선물용 애완견을 찾는 사람
이 부쩍 늘었다는 것이었다. 주인 사내의 전화
를 받다 보니 문득, 놈이 떠올랐다. 피를 갈구하
는 놈의 눈빛이. 오늘 놈이 원하는 대로 해 줘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철망을 들고 우리로 가서 치와와 두 마리와
마르티스 한 마리를 넣었다. 트럭에 실어 놓고
서 집으로 들어와 전에 조금씩 사서 모아 놓은
수면제를 꺼냈다. 캡슐을 벗겨 내고 분말가루
를 내서 수건에 듬뿍 묻힌 뒤에 운전석 왼편에
감춰 놓았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칼을 좌
석 밑에다 감췄다. 준비는 모두 갖춰진 셈이었
다. 어디선가 놈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점심을 먹고서 애완견 센터로 갔다. 개를 넘
기고 돈을 챙겨서 가게를 나왔다. 시계를 보니
네시였다.
나는 지바현 부근에서 일을 해야겠다고 마
음먹고 트럭을 몰았다. 한참을 달려 지바현에
닿으니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했다. 인적이 뜸
한 도로 위를 혼자 걸어가는 여자가 보였다.
나는 그녀를 첫번째 희생자로 점찍었다.
그녀 옆에 트럭을 세우고 길을 물었다. 그
여자는 친절하게 가는 길을 설명해 주었지만
나는 계속해서 못 알아들은 척했다. 이토록 착
하고 정이 많은 여자가 놈의 희생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녀가 안스럽게 느껴졌다.
안타까워 하던 그녀는 약간 망설이다가, 가
는 길이니까 태워 주면은 알려 주겠노라고 했
다. 나는 순박한 농부의 표정을 지으며 고맙다
는 인사를 연신 했다.
아무런 의심없이 그녀는 차에 올라탔다. 나
는 그녀가 안전벨트를 매는 사이에 수면제를
잔뜩 묻힌 손수건으로 그녀의 얼굴을 틀어막
았다. 그녀는 몇 번 몸부림치다가 이내 정신을
잃었다.
나는 안전벨트를 다시 채우고 나서 차를 출
발시켰다. 백미러로 목격자가 있나 살펴보았
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설령 누가
보았다 하더라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특
별한 특징도 없는 도요다 다용도 트럭은 일본
에서만 몇십 만 대가 굴러다니니 차량 추적도
용이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가족이 실종 신고를 낸다 해도 요즘
같은 시절에는 일반 가출로 처리될 확율이 높
았다. 수천 만이 사는 도쿄에서 그녀의 생사
여부를 판가름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경찰이
그 누구보다도 잘 알 테니까.
나는 마을을 거치지 않기 위해 비록 멀지만
돌아서 집으로 갔다.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자
동차 불빛이 차 안을 훑고 지나갔다. 나는 가
끔히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내 쪽으로 고
개를 비스듬히 누인 채 잠이 들어 있었다. 남
이 보더라도 마치 남편의 차 안에서 졸고 있는
부인으로 생각할 만큼 태평스럽게.
집으로 돌아오니 개들이 짖으면서 나를 반
겼다. 나는 여전히 잠이 들어 있는 그녀를 어
깨에 들쳐 멨다. 그녀는 예상외로 가벼웠다.
나는 그녀를 창고로 데려갔다. 기둥에다 묶어
놓고 재갈을 물렸다. 만약의 사태를 위해서였
다. 제일 가까운 집과의 거리가 10킬로 가량
떨어져 있어서 재갈까지 물릴 필요는 없었지
만 지나가는 행인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쳤기 때문이었다.
핸드백을 열고 소지품을 뒤져 보려는데 그
녀가 고개를 들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두 눈이 무척 예뻤다.
나는 그녀의 두 눈을 보다가 다시 소지품을 뒤
졌다. 화장품과 지갑, 수첩이 전부였다.
수첩과 지갑을 펼쳐보고 나니 그녀의 신상
에 관한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이름은 아주사
요꼬, 나이는 26세, 직업은 미용사였다. 결혼
은 아직 안 한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소지품을 핸드백에 넣었다. 그녀
는 이제사 자신이 납치되어 왔다는 사실을 깨
달은 모양이었다. 그녀의 두 눈은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겁에 질린 그녀의 모습이 더없이 사랑스럽
게 느껴졌다. 나는 그녀에게 연민의 정을 느꼈
다. 갑자기 뒤통수에 그 놈의 싸늘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 놈은 피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 놈은 어서 빨리 해치우라고 재촉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지하실을 나왔다. 내일
내일 그녀를 자르리라.
# 12월 14일
가급적 빨리, 또 다른 희생자를 찾아야만 한
다. 그 놈이, 그 두 눈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
다. 아, 정말이지 미치겠다!
아늘 아침 나는 아주사 요코를 놈에게 바칠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개에게 놓는 마
취 주사를 놓았다. 맨 정신으로 몸부림 칠 그
녀를 난도질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삼십분 뒤에 창고로 가니 그녀는 마취되어
있었다. 나는 그녀를 들쳐 메고 창고로 갔다.
홈을 파 놓은 테이블 위에 그녀를 눕혔다. 피
가 흘러 큰 물통에 채워지게끔 준비를 해 놓고
준비한 연장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그 놈의 시
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놈은 흐뭇해하며 나
를 지켜보고 있음이 분명했다.
아주사 요꼬의 머리는 작았다. 그녀의 머리
는 한번에 쪼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수
많은 연장 중에서 손도끼를 들었다. 내가 손도
끼를 고른 이유는, 어릴 때 손도끼로 살아 있는
것을 죽여 봤기 때문이었다. 물론 사람은 아니
었다.
그때 나는 10살이었다. 무슨 이유였는지는
정확히 기억할 수 없지만 나는 그날 아버지에
게 심하게 맞았다. 나는 그래서 복수를 생각했
다. 복수의 대상은 아버지가 몇 년 동안 저축
한 돈으로 산 송아지였다. 아버지는 그 송아지
를 무엇보다도 애지중지했다. 외아들인 나보
다도.
나는 그래서 그 송아지를 죽여야겠다고 마
음먹었다. 그때 내가 택한 도구가 삼촌이 쓰던
손도끼였다. 지금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지
만 당시 10살인 나에게는 크고 무거운 흉기였
다.
복수일은 부모님이 결혼식에 가는 날로 택
했다. 나는 학교에서 체육 시간에 양호실에 가
는 척하고 빠져 나와 집으로 달려갔다. 집은
예상대로 비어 있었다. 나는 피가 튈지 몰라
옷을 갈아입었다. 그 다음에 손도끼를 꺼내 들
고 송아지에게 다가갔다. 송아지는 마침 낮잠
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송
아지를 도끼로 찍었다. 송아지는 그다지 큰 상
처를 입지 않았는지 큰소리로 울부짖었다.
피가 얼굴에 튀고 송아지가 울부짖자 내 정
신이 아니었다. 나는 미친 듯이 도끼를 휘들렀
다.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송아지의 목은
난도질당해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나는 빠르게 씻은 뒤에 옷을 갈아입었다. 도
끼와 피묻은 옷을 비닐봉지에 싸서 뒷산에다
묻었다. 학교로 달려가니 체육시간이 막 끝나
고 있었다.
방과 후 나는 학교에 남아 애들하고 축구를
하고 놀았다. 밤이 깊어서 집으로 돌아오니 집
안 분위기는 말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제정신
이 아니었고,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보기도 힘
든 경찰도 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경찰의 조사를 받았지만 나
를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때
짜릿한 승리감과 쾌감을 느꼈다. 그 이후로는
한번도 맛볼 수 없었던.
다시 그 놈이 나를 노려보며 재촉했다. 기분
나쁜 놈!
나는 손도끼를 번쩍 들어올렸다. 잠든 그녀
의 얼굴이 한눈에 들어왔다. 순간, 그녀의 커
다랗고 까만 두 눈이 떠올랐다. 도저히 도끼를
내려칠 수 없었다.
그래 이번에는 작두를 준비했다. 차갑게 빛
나는 작두 위에 그녀의 목을 올려놓았다. 손잡
이에 몸무게만 실으면 그녀의 목은 간단하게
몸과 분리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자꾸만 친절하게 길을 일러 주던 그녀의 손
짓 몸짓이 떠올랐다. 그녀의 커다란 두 눈과
함께.
놈은 어서 자르라고 집요하게 요구했지만
나는 못 들은 척하고 그녀를 다시 지하실로 옮
겼다. 그녀는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집으로 들어서니 놈이 미친 듯이 내 주위를
맴돌았다. 나는 눈을 꼭 감았지만 놈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내일이라도 다른 희생자를 물색해야
하리라. 요꼬를 죽일 수 없다면. 이번에도 내
가 거부한다면 놈은 나의 심장을 꺼내 가리라.
# 12월 15일
나는 새로운 희생자를 전부터 눈여겨 봐 왔
던 도쿄의 부랑자로 결정했다.
밤이 이슥해져서 나는 헌옷으로 갈아입었
다. 트럭을 몰고서 신쥬쿠로 가 한적한 곳에
차를 주차시켰다. 한참 걸어가니 웅대한 자태
를 뽐내고 있는 도쿄 도청사가 보였다.
화려한 건물의 지하도로 들어가니 예상했던
대로 수많은 부랑자들이 종이 박스로 집을 만
들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엔고로 직장을 잃은
저임금 노동자나 사회에서 버림받은 폐인들이
었다. 그중 누가 사라진다 해도 아무도 신경쓰
지 않으리라는 것은 뻔했다.
나는 다시 지하도를 나와 밤거리를 걸어다
니다가 시간을 죽일 겸 빠징꼬를 했다. 천 엔
을 가지고 구슬을 바꿨지만 한 시간 만에 다
털리고 말았다. 가게를 나와서 신문지로 몸을
두르고 다시 지하도를 찾았다.
밤 11시가 넘어서인지 종이박스촌(村)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술에 취하
거나, 추위를 피해 몰려 온 부랑자들의 모습이
여럿 눈에 띄었다. 한쪽에 웅크리고 있으니 바
로 옆 박스로 한 사내가 술에 잔뜩 취한 채 들
어갔다. 나이는 사십대 초반으로 보였으나 술
에 잔뜩 절어 있었다.
나는 그를 점찍었다. 내가 술 한잔 더 하지
않겠냐고 하자 그는 말없이 나를 따라나왔다.
나는 그의 절친한 친구인 양 사내를 부축해서
그곳을 빠져 나왔다. 사내를 길가에 서 있게
하고 주차장에서 차를 빼내 왔다. 사내를 트럭
에 태운 뒤 가지고 간 산토리 위스키를 꺼내
주었다.
사내는 고맙다고 고개를 끄덕인 뒤 위스키
를 나발 불었다. 위스키에다 수면제를 탄 때문
인지 사내는 금새 잠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그를 지하실로 데려갔
다. 불을 켜자 요꼬가 잠이 들어 있다가 화들
짝 깨어 났다. 요꼬는 나와 그를 의아한 눈
으로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뭔가를 호소
했으나 재갈 때문에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그녀가 눈으로 호소했을 때 나는
그녀가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것
을 깨달았다. 사내를 바닥에 내려놓고 요꼬에
게 음식을 주기 위해 집으로 들어갔다.
부엌으로 들어가니 갑자기 놈이 눈 앞으로
확 다가왔다. 잔뜩 굶주린 눈빛이었다. 그 놈
은 당장 모든 것을 원하고 있었다. 나는 그 놈
의 으시시한 눈빛에 공포를 느꼈다. 무서웠다.
나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다 지하실로 뛰어
내려갔다. 요꼬가 의아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
았다.
나는 의혹에 가득찬 요꼬의 시선을 받으며
부랑자를 업고 나왔다. 사내를 테이블에 눕힌
다음 도구를 펼쳤다. 그 놈은 탐욕스런 눈으로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망치를 쓸까 잠시 망설이다가 손도끼를 치
켜들었다. 그때였다. 마취된 줄 알았던 사내가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곤 도끼를 치켜든 나를
보고는 놀라 비명을 질러댔다.
나 역시 놀랐지만, 비명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그래서 공포에 가득 찬 두 눈 사이를 손도
끼로 내리쳤다.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요란한
비명 소리는‘꺼억꺼억’하는 소리로 바뀌었
다. 사내는 눈을 부릅떴고 두개골은 반으로 갈
라져 있었다.
나는 환희를 느꼈다. 그건 그 놈도 마찬가지
인 건 같았다. 나는 작업에 들어갔다. 먼저 쓸
모 없을 머리와 내장을 갈라 냈다. 갈비뼈를
들어내고 내장을 쏟아내니, 나도 모르게 구역
질이 나왔다.
매우 역겹고 피비린내 나는 작업이었지만,
그리 싫지는 않았다. 쓸모없는 머리와 내장은
뒤뜰에 묻고, 큰 물통에 받은 피는 주변 나무
에 주었다.
우리 집 주변 나무들은 사람의 머리와 내장
이 거름이 되고, 사람의 피를 빨아먹으며 자라
날 생각을 하니 웃음이 나왔다. 나머지 신체
부위는 부분별로 절단해 냉장고에 넣어 두었
다. 뼈가 잘 안 잘려, 소형 전기톱이 필요하다
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 장만해야겠다고 머릿
속에 기억시켜 두었다.
작업을 모두 끝내고 나니 새벽 4시였다. 작
업 전 과정을 만족스럽게 지켜본 놈은 흡족한
미소를 짓고는 스르르 사라졌다.
일을 모두 끝내고 나니 해방감이 들었다. 오
늘은 꿈 없는 깊은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살인이 이렇게 개운한 것이라면 할 만 하겠다.
# 12월 17일
눈을 떠 보니 새벽이었다. 새벽에 잠이 들었
다가 새벽에 눈을 떴으니 꼬박 이십사 시간을
잔 셈이었다. 이토록 깊은 수면은 전에 없던
일이었다.
배가 고파 식사를 하다 보니 문득, 지하실에
서 굶고 있을 요꼬가 떠올랐다. 편의점에 사
둔 주먹밥 일곱 개와 물을 가지고 지하실로 내
려갔다. 그녀는 지치고 야위어 있었다.
재갈을 풀어 주고 손도 풀어 주었다. 그녀는
눈꺼풀을 밀어올리는 것도 힘겨운-지 가까스
로 눈을 떴다. 주먹밥을 내밀자 독수리가 병아
리를 낚아채듯 순식간에 뺏어 갔다. 그리곤 다
시 뺏을새라 비닐봉지도 안 벗기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
다 보니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놈도
필경 좋아하리라.
주먹밥 일곱 개를 순식간에 다 먹어 치운 그
녀는 나에게 뭔가 물어 볼 기세였다. 말을 붙
이려는 그녀에게 위협적인 태도를 보이자 그
녀는 입을 다물었다. 나는 짐짓 화가 난 척 지
하실을 나왔다. 재갈도 물리지 않고, 결박도
풀어 놓은 채로.
나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냉장고를 열고 사
내의 몸 부위 중에서 갈비와 배에서 도려낸 살
을 잘라 잘게 다졌다. 생각보다 살이 많아 보
이지 않았다. 냉장고에서 사내의 살코기 좀더
꺼냈다.
고기를 들고 창고로 갔다. 개 먹이를 꺼내
개장으로 가니 굶주려 있던 개들이 아우성 쳤
다. 나는 두 마리의 도베르만에게 먼저 다진
살코기를 던져 주었다. 두 마리 개는 요꼬가
주먹밥을 먹어 치우듯이 순식간에 사람 고기
를 먹어 치웠다.
나머지 다른 개들에게도 다진 살코기와 사
료를 나눠 주었다. 평소에 귀여워하던 치와와
에게는 손가락을 하나 던져 주었는데 순식간
에 발라 먹었다.
개들에게 먹이를 주고 돌아서려는데 놈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 놈이 귓가에다 대고‘이
제는 네 차례야!’하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나
는 그것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고기를 먹
고난 개들의 빛나는 눈빛을 보니 더욱 꺼려졌다.
놈은 계속 나를 쫓아다니며 먹으라고 재촉했
다. 하지만 차마 그짓만은 하고 싶지 않았다.
# 12월 25일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마을에 나갔다 왔는데
모두들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들떠 있었다. 나는
편의점에서 요꼬에게 줄 주먹밥을 사왔다.
나는 그 동안 요꼬의 많은 부탁을 들어 주었
다. 자갈을 물리지 않고 결박을 풀어 주는 것
외에도 하루에 한 번씩 7개의 주먹밥을 가져다
주었으며, 헌옷과 담요를 갖다 주었다. 요꼬가
입을 옷가지들은 마을 부녀회 회장에게 겨울
철 개에게 만들어 입힐 거라고 거짓말을 해서
얻은 것이었다.
그리고 지하실 수도꼭지 밸브를 열어 둬, 마
음껏 마시고 소원 대로 씻게 했으며 한쪽 구석
에 간이 화장실을 마련해서 생리적인 현상도
해결할 수 있게 했다.
그녀는 나의 이런 호의에 적이 안도감을 느
끼는 눈치였다. 그녀는 나와 많은 이야기를 나
누고 싶어 하는 눈치였으나 그것만은 들어 주
지 않았다. 난 말이란 것이 사람의 마음을 사
납게도 하지만 한없이 나약하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주먹밥과 함께 크리스마스 선물로 커
다란 매트리스를 가지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요꼬는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단히 기뻐했다.
그녀는 철 없는 어린아이처럼 크리스마스를
나와 함께 보내고 싶다고 제의했으나 나는 아
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베푸는 대신에 그녀의 행동
을 몰래 훔쳐본다. 그녀가 밥을 먹는 모습을
잠을 자는 모습을 뭔가 끄적거리는 모습을
목욕하는 모습을.
지하실을 나와 창고로 갔다. 개들의 크리스
마스 선물로 준비한 고급 먹이를 가지고 개장
으로 갔다. 놈들에게 먹이를 나눠 주었지만 나
의 예상과는 달리 기뻐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사람 고기를 먹어 본 뒤로 놈들의 입맛이 변
한 모양이었다. 놈들은 사람고기라면 환장했
다. 한번은 돼지고기와 섞어 준 적이 있는데
돼지고기만 남기고 사람고기만 다 먹어치우기
도 했다. 그래서 나는 아끼느라고 사흘에 한번
씩 사람고기를 주었는데도 불구하고 이제는
한쪽 허벅지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나의 귀여
운 것들이 손가락, 발가락할 것 없이 모두 먹
어 치운 것이었다.
개들은 비싼 돈을 주고 산 먹이를 먹는 둥
마는 둥했다. 나는 냉장고에 남은 허벅지를 놈
들에게 꺼내 주려고 부엌으로 갔다.
무심코 TV를 켜니 크리스마스 특선 바베큐
요리 강좌를 하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
으니 배가 고파왔다. 그때, 그 놈이 나타나 나
에게 그 짓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나는 거절했
지만 놈의 요구는 집요했다. 난 더 이상 놈의
요구를 뿌리칠 수 없음을 느꼈다.
나는 찬장에서 야끼니꾸 양념 소스를 꺼냈
다.(注: 야끼니꾸 우리의 불고기가 일본에 들
어가 일본식으로 변모한 일본식 불고기. 일본
에서 가장 인기있는 음식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불고기 양념을 팔듯이 일
본에서도 야끼니꾸 소스를 팔고 있다. 아이러
니컬한 것은 우리의 불고기가 건너가 생겨 난
야끼니꾸를 요즘 우리나라에서 다시 역수입하
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강남에는 비싼 야끼
니꾸점이 생기기 시작하고 있다.) 냉장고에서
꺼낸 허벅지를 잘게 여며 소스에 섞어 양념을
했다.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TV에서는 요리 강좌가 끝나고 경쾌한 캐롤
송이 연주되고 있었다. 나는 캐롤송을 따라 부
르며 사람의 허벅지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지
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몇 번 뒤집었는데 그새 다 익은 것 같았다.
놈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허기가 졌다.
나는 못 이기는 척하고 허벅지 고기를 집어 들
었다.
입에 넣었다. 나는 고기를 천천히 먹으며 그
놈의 속삭임이 맞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인간의 허벅지 구이는 매우 맛이 있었다.
한번 먹어 본 사람은 결코 잊지 못할 정도로.
# 1월 7일
사람의 고기 맛을 알고 나니 도저히 중단할
수 없었다. 나는 완전히 빠져 들고 말았다. 그
놈의 나의 그런 모습을 보고는 흐뭇해 한다.
놈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는다.
나는 놈이 여전히 두렵지만 예전처럼 자살
해 버리고 싶을 정도는 아니다. 놈이 시킨 대
로 행한 뒤부터는 눈길이 한층 자상해졌다. 우
리의 관계는 이제 뗄레야 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사냥개처럼 사냥을 하면 놈은
주인처럼 기뻐한다. 놈은 피를 갈구하고 있었
다. 메마른 논에서 물을 빨아들이듯이 놈은 피
를 빨아들이려 하고 있다.
나는 놈이 시킨 대로 다했지만 놈은 끊임없
이 요구한다. 그 놈은 가끔씩 아주사 요꼬를
원해 나를 괴롭힌다.
그녀를 살려 줄 생각은 없지만 지금은 죽이
고 싶지도 않은 것이 지금의 솔직한 내 심정이
다. 나는 그녀의 생명을 연장시켜 놨을 뿐이다.
요꼬는 점점 감금 생활에 익숙해 가는 것 같
았다. 나와의 대화를 끊임없이 원하던 그녀는
요즘 들어서 혼자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점
점 많아지고 있다. 공포에 익숙해졌거나 자아
를 상실해 가고 있거나 둘 중의 하나리라.
그녀는 곧잘 끄적거리던 낙서도 이제는 거
의 안 하고 있다. 나는 오늘 그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전기난로를 구입해 지하
실로 옮겼다. 하지만 그녀는 내가 보고 싶어하
던 미소를 보여 주지 않았다. 멍하니 타오르는
불꽃만 바라볼 뿐이었다.
한때는 그녀가 자살할지도 모른다고 추측했
는데 오늘의 그녀를 보니 자살할 가능성은 전
혀 없어 보였다. 그녀가 자살을 하면 내 일도
훨씬 쉬워질 텐데. 아냐, 웬지 모르지만 그녀
가 자살을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왜일까? 요즘은 가끔씩 내가 그녀를 살려 두
는 이유가 뭘까를 가끔 생각해 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좀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만.
그 동안 테이블에 4명의 희생자가 올랐다.
냉장고에는 개들에게 조금씩 나눠 주고 내가
먹을 수 있는 사람고기가 일주일치 정도 저장
되어 있다.
먹이 사냥은 하면 할수록 쉬워지고 있다. 나
는 멀리서 사냥을 해 오는 게 귀찮아 네번째
희생자는 마을 사람으로 택했다.
마을 놈 하나씩 잡아다가 테이블에 올리면
조만간 놈들은 공포에 질리게 될 것이다. 언제
실종될지도 모른다는.
나는 마을 놈들이 공포에 질려 이불을 뒤집
어쓰고 떨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마치
닭장의 닭처럼. 나는 요리사가 되어 이 닭 저
닭을 보고서 한 마리를 택한다. 잔뜩 공포에
질린 눈빛.
정말이지 너무도 통쾌하다!
요즘 들어 나는 삶의 즐거움을 깨닫고 있다.
나도 개들도 점점 몸이 건강해지는 것을
느낀다.
# 1월 20일
오늘 날씨는 이번 겨울 최저 기온을 기록했
다. 어젯밤부터 내린 눈으로 온통 세상이 하얗
게 덮여 있다.
오늘은 기분이 상쾌해서 색다른 요리를 시
도했다. 열흘 전에 도쿄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구한 큰 솥을 걸었다. 고무호수를 수도꼭
지에 연결해 솥에다 물을 받았다. 워낙에 큰
솥이라 물을 채우는 데만 한 시간이 꼬박 걸렸
다. 솥 밑에다 장작불을 밀어넣고 불을 때기
시작했다.
다시 한 시간 가량 불을 때고 나니 물이 펄
펄 끓기 시작했다. 나는 지하실로 내려가서 어
젯밤에 잡아온 여행자를 마취시켜 창고로 끌
고 왔다.
일단 여행자의 머리를 깍았다. 먹을 때 털이
있으면 성가시니까.
그리곤 옷을 모조리 벗겨 통째로 솥에 넣었
다. 사내는 섭씨 100도의 끓는 물에 들어가니
마취가 깨는지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고 거대한 솥뚜껑
을 덮었다. 솥 안에서의 처철한 움직임이 한동
안 이어지다가 잠잠해졌다.
나는 뜨거운 김이 뿜어져 나오는 솥을 바라
보았다. 순간, 나에게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
다. 솥 안에 들어간 사내는 뜨거운 물에 타 죽
을까, 아니면 익사해 죽을까 하는.
장작을 때다 보니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
다. 여행자를 요꼬와 함께 먹어야겠다는.
# 1월 21일
오늘은 요꼬에게 고깃국을 먹이는 날이었
다. 나는 어제 온종일 끓였지만 혹시나 해서
다시 서너 시간 가량 솥에 불을 땠다. 점심 무
렵에 솥뚜껑을 벗겨 보니 여행자는 형체도 알
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고아져 있었다.
나는 고깃국을 떠서 개들에게 먼저 먹였다.
개들은 뜨거울 텐데도 환장을 하고 좋아했다.
개들에게 잔뜩 퍼 준 다음에 이번에는 사발에다
국을 떴다. 사발을 가지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사람고기를 잘게 썰
어 살짝 데쳤다. 그리곤 국에다 얹어 지하실로
가져갔다.
그 동안 미소시루(장국)도 제대로 구경해 보
지 못했던 그녀인지라 사람 고기라는 사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국물까지 다 먹고 난 그녀는 대단히 맛있다
는 인사말도 잊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에 모처럼 생기가 돌았다. 그녀
가 기뻐하자 나도 매우 기뻤다. 그놈도 즐거워
하는 눈치였다.
그녀와 나 사이가 좀더 가까워졌다는 확신
이 들었다. 그녀는 이제 나와 같은 사람 고기
를 먹은 유일한 동지다. 아무도 우리를 갈라놓
을 수 없는.
# 2월 5일
요즘 들어서는 사람고기도 싫증이 나기 시
작했다. 오늘 아침에는 고기에서 역겨운 냄새
가 나는 것만 같아 손도 댈 수 없었다. 그래서
개들에게 가져 갔더니 개들은 질리지도 않는
지 환장을 했다.
어제는 도꾜에 가서 치와와 두 마리를 애완
동물 가게에 팔았다. 그 중 한 마리는 사람 손
가락만 주로 먹여 손가락이라면 환장을 하는
놈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인 여자는 개가 자기의
거래처 보다 싸다며 무척이나 좋아라 했다. 계
속 거래를 하고 싶다고 해서 나는 엉터리 전화
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나는 집으로 오는 길에 내내 웃었다. 너무
웃어서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상상하는 것만
으로도 너무나 즐겁다.
귀여운 치와와에게 손수 먹이를 주려고 손
을 내민다. 그 순간, 치와와는 쏜살같이 달려
들어 먹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손가락을 텁
썩 문다. 그리곤 순식간에 먹어 치운다? 하하
하핫!
아무리 생각해도 지겹지 않다. 사랑스런 치
와와여, 부디 나의 기대에 부응해다오!
이제는 먹는 것이 목적이 아닌, 그 과정에
서 즐거움을 찾아봐야 겠다.
# 2월 10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재미있는 생각이 떠
올랐다. 나는 떠오른 생각을 실천해 보기 위해
서 점심을 먹고 트럭을 몰았다. 도쿄로 나가다
보니 한 건장한 젊은이가 걸어가는 게 보였다.
나는 놈의 희생물로 점찍고 곧바로 젊은이
에게 접근했다. 젊은이는 태워 주겠다는 나의
제의에 아무 의심 없이 트럭에 올랐다. 나는
수면제를 탄 음료수를 권했고 젊은이는 아무
의심없이 받아마셨다. 하지만 건장한 젊은이
라서 그런지 잘 듯 말 듯하면서도 잠을 자지
않아 수면제를 묻힌 손수건을 썼다. 젊은이가
거칠게 반항하며 내 얼굴을 할퀴어서 상처가
남았다. 나는 화가 나서 칼을 꺼냈는데 그제서
야 약효가 오르는지 젊은이가 맥없이 쓰러졌다.
젊은이를 실고 집으로 오면서 나는 애초의
계획을 수정했다. 나에게 대든 죄가 얼마나 큰
지를 알려 줄 필요성이 있었다.
나는 젊은이의 사지를 테이블에 묶어 놓고
어깨쭉지에 부분 마취를 했다. 그리곤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젊은이가 앞으로 지
을 표정을 상상하다 보니 두 시간이 후딱 지나
갔다. 나에게는 더없이 행복한 시간이었다.
젊은이가 마침내 눈을 떴다. 나는 내가 애용
하는 도끼를 들었다. 졸음이 덜 깼는지 흐리멍
텅한 눈으로 올려다보던 젊은이는 내가 도끼
를 들어올리자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나는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면 도끼를 그
의 오른팔을 향해 휘둘렀다. 팔이 잘리자, 그
는 부분 마취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실
신했다. 나는 그의 잘린 부위에다 지혈제를 쏟
아부은 뒤 붕대로 감아 출혈을 멈추게 했다.
젊은이는 나의 치료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물을 물
을 끼얹었다. 의식을 되찾은 그는 잘린 자신의
팔을 보고는 다시 비명을 질렀다.
언제 나타났는지 그 놈이 천장에서 지켜보
고 있었다. 놈은 흐뭇한 눈길로 지극히 만족스
럽다는 듯이 나의 동작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
았다. 그 놈이 좋아하자 나 또한 신이 났다.
나는 예리하게 갈을 식칼로 젊은이가 보는
앞에서 그의 팔을 다시 부분별로 토막냈다. 그
는 눈을 감아 보려 하지 않았으나 나는 협박을
해서 기어이 내가 하는 작업을 보게 했다.
“오, 신이여 죄인을 용서하소서!”
젊은이는 심장을 긁어내는 듯한 신음소리로
기도를 하더니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뱃속에
들은 오장 육부를 토해 낼 듯이.
나는 신을 운운하는 젊은이에게 마지막 선
물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개장에서 식욕이 좋
은 도베르만 두 마리를 데려 왔다.
그때까지 구토를 계속하고 있던 젊은이는
내가 개를 데려오자 갑자기 구토를 멈췄다. 그
러더니 이번에는 부들부들 떨면서 큰소리로
엉엉 울기 시작했다.
개를 젊은이가 잘 볼 수 있는 곳에다 묶어
놓고 젊은이의 팔부위를 던져 주었다. 개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어 그의 팔을 게걸스
럽게 먹기 시작했다. 젊은이는 입에 거품을 물
고 소리를 지르더니 그대로 기절했다.
나는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을 느꼈다. 머릿속
에서 폭죽이 터지더니 이내 아랫도리가 축축
하게 젖어 왔다. 그 놈이 빨간눈을 빛내며 천
천히 멀어져 갔다가 다가오곤 했다. 나의 행위
를 칭찬하는 움직임이었다.
일을 끝내기 위해서 손도끼를 들어올렸다.
그 순간, 그 놈이 나를 만류했다. 잠깐 동안 생
각해 보니 이대로 죽이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내일의 즐거움을 위해 젊은이를,
요꼬가 갇혀 있는 지하실로 옮겼다. 요꼬는 팔
잘린 젊은이를 보고 비명을 질렀지만 나는 아
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지하실을 나왔다.
어서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 2월 11일
요꼬가 나에게 처음으로 대항했다.
내가 젊은이를 데리러 지하실로 들어가자,
문 옆에 숨어 있던 요꼬가 나무 꼬챙이를 들고
대항했다. 나는 옆구리에 상처를 입었으나 그
리 깊은 상처는 아니었다. 나는 화가 치밀었지
만 참았다.
요꼬에게 엽총을 겨누고 멀찍이 떨어져 있
으라고 명령했다. 요꼬는 순순히 몽둥이를 놓
고 겁에 잔뜩 질린 채로 물러섰다.
나는 젊은이를 다시 끌어냈다. 젊은이는 의
식을 잃은 채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요꼬가
씻어 주었는지 얼굴이 새하얗다. 그의 얼굴을
보자 질투가 치밀었다.
젊은이를 들쳐 업고 나와 다시 테이블에 묶
었다. 부분 마취 주사를 놓은 다음에 차가운
물을 부어 내면 속으로 숨은 의식을 밖으로 끌
어냈다. 그는 도끼를 보자 다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어제처럼 그의 왼팔도 잘라냈
다. 그는 귀찮게도 다시 기절했다.
피가 멎게 응급처치를 한 다음에 다시 정신
을 차리게 했다. 그 다음에는 어제와는 약간
다르게 그의 팔을 그가 보는 앞에서 요리를 했
다. 불에 올려놓고 굽자 맛있는 냄새가 집안에
퍼졌다. 내 입 안은 이내 침으로 가득 고였다.
젊은이는 한동안 내가 무엇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는지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완전히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나는 그의 기대를 충족
시키기 위해, 채 익지도 않은 그의 팔을 뜯어
먹기 시작했다.
멍히 있던 젊은이가 갑자기 괴상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입을 막게 할 속
셈으로 고기를 그의 입에 갖다 댔다. 그는 필
사적으로 저항했다. 내가 강제로 그의 입을 열
려는 순간, 그의 눈에서 뭔가 결심의 빛이 비
치더니, 이내 입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
다. 젊은이의 움직임이 일시에 멈췄다.
혀를 깨물어 자살을 한 것이다. 내가 손 쓸
틈도 없이. 나는 몹시 기분이 나빴다. 내가 죽
이지도 않았는데 죽다니. 나는 많은 즐거움을
놓쳤다. 나는 화가 나서 시체도 토막내지 않
고, 통째로 도메르만 우리에 던져 주었다.
매우 불쾌한 날이었다.
# 2월 25일
겨울은 끝나 가고 있었다. 모든 것이 귀찮아
지기 시작했다. 살인도 더불어 요리까지도.
그 놈은 오늘도 잔인하게 죽여 주기를 원했
지만 나는 간단하게 산 생명을 시체로 만들었
다. 막상 죽여는 놓았으나 뒤처리가 귀찮았다.
문득, 지금까지 삶고, 굽고, 찌고, 탕을 해
먹는 둥 여러가지 요리를 해 봤으나, 날로 먹
은 적은 한번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고기로 사시미(회)나 스시(초밥)를 만들어 보
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허벅지를 얇게 저며, 회처럼 썰었다.
그리고 입에 넣었다.
역시 맛있었다. 아니 최고의 맛이었다. 진작
에 이렇게 먹지 않았던 게 후회가 될 정도였다.
나머지 살로 스시를 만들었다. 그것 또한 일
품이었다.
혼자 먹기에는 너무도 아까워 스시를 요꼬
에게 가져 갔다. 요꼬는 거의 폐인이 되어 가
고 있었다. 그녀의 크고 예쁜 눈은 더 이상 찾
아볼 수 없었다.
요꼬는 내가 들어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
다. 내가 만든 스시를 내려놓자 그제서야 눈을
반짝이며 우적우적 먹기 시작했다.
아쉽다. 요꼬가 예전이 그 생기 있고 아름다
운 까만 눈을 나에게 보여 줄 수 있으면 좋으
련만.
# 3월 2일
오늘은 마을로 식료품을 사러 나갔다가 따
가운 시선을 받았다. 그들과 가까운 거리에 내
가 산다는 것이 무척이나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문득, 마을 사람들 전부를 골탕먹일 좋은 계
획이 떠올랐다. 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희생자가 필요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서 세밀한 계획을 짰다.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고 하는 과정이 정말이
지 너무도 즐겁다.
실행할 자신이 있다
# 3월 19일
마을에 갔다 온 뒤로 나는 네 명을 다시 테
이블에 올렸다. 그 중의 두 명은 개들과 나와
요꼬가 먹어 치웠다. 두 명은 냉장고에 저장해
두었다.
나중에 잡아온 두 명은 둘다 마을 사람들이
었다. 1월 달의 실종에 이어 두 사람이 더 사라
졌으니, 마을은 온통 공포에 떨고 있으리라.
나는 그들을 기발한 방법으로 마을로 돌려 보
내리라. 끽끽!
나는 냉장고에 저장해 둔 두 명을 부위별로
조그맣게 절단해 솥에 넣었다. 그리고는 휘파
람을 불면서 솥에 장작을 땠다. 일차로 한번 끓
인 다음에 즐거운 마음으로 마을로 찾아갔다.
마을은 겉보기에는 평온해 보였지만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
다. 사람들이 눈빛이 달랐다. 마을을 처음 찾
는 여행자를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의 눈 속에
는 적의와 불신과 반감과 공포가 얽혀 어지러
이 교차하고 있었다.
아마도 세 사람이 흔적도 없이 실종된 일은
마을이 생기고 처음 있는 일이리다. 출장소에
서 근무하는 경찰 네 명이 마을 곳곳을 지키고
있으나 그들 역시 두려움과 긴장으로 인해 몸
이 잔뜩 굳어 있었다.
식품점에 들어갔더니 식표품가게 주인이 마
을회관에서 회의가 있으니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무슨 이야기들을 나누나 궁금해서 따라
갔다.
소위 대책회의라는 걸 하는지 사람들이 많
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은 마치 탑을 쌓듯이
회의를 착착 진행시켜 나갔다. 제일 먼저 나온
것이 몇 년도에 이와 유사한 실종사고가 있었
는지 하는 것들이었다. 사례 별로 열거가 끝나
자 그 다음으로 안건이 상정되었다. 당분간 문
단속 잘하고, 조를 짜서 밤에 순찰을 돌기로
하고, 혼자서는 돌아다니지 말고 하는 류의 틀
에 박힌 의견들이었다.
얼추 회의가 끝나가자 한때 관직에 있었다
는 노인네가 일어나서 이번주 일요일에 마을
사람들 모두 신사에 참배를 가서, 이 불경스러
운 사건을 해결해 달라고 빌자고 제의했다. 마
을 사람들은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찬성했다.
쯧쯧! 무식한 것들!
나는 속으로 혀를 차며 손을 번쩍 들었다.
회의를 주재해 나가던 학교 선생이란 작자가
나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모여 있는 사람들은 힐끔거리며 나를 이상
한 눈으로 쳐다봤다. 호기심과 경멸이 뒤섞인
눈길을 받으며 나는 마을 사람들 간의 불신과
경계를 풀고, 서로 화합하기 위해 신사에 들렀
다 오는 길에 들판에서 회식을 하자고 제의했
다. 그리고 나서 내 의견에 동조한다면 샤브샤
브는 내가 제공할 의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나의 제의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제일 먼
저 양조장 주인인 야마구찌가 술을 맡겠다고
나서자 다른 사람들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겠다
고 느꼈는지 작은 것들을 하나씩 맡겠노라고
자청했다.
순식간에 회식에 관계된 준비가 갖추어졌다.
회의가 거의 끝날 때쯤 나를 바라보는 마
을 사람들의 눈길이 한층 부드러워진 것을 느
낄 수 있었다.
# 3월 22일
오늘은 매우 즐거운 날이었다. 그 동안 세웠
던 나의 계획을 완성하는 날이기도 했다.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솥에다 야채를 넣
고 마지막으로 불을 땠다. 세 시간 가량 땐 다
음에 사람고기와 국물을 양철통에 퍼담았다.
시장에 나가서 사 온 양철통 스무 개에다 국자
로 퍼 담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다. 트럭에 실
고 나니 12시였다. 국물이 넘칠까봐 천천히 약
속된 장소로 갔다. 다행히도 마을 사람들은 아
직 안 와 있었다.
부녀회 사람들과 몇몇 남자들이 식사 준비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돗자리 위에 상을 놓고,
젓가락과 종이컵, 음료수, 술, 간단한 반찬
거리를 올려놓느라고 모두들 정신이 없었다.
나는 부녀회 회장에게 가서 인사를 하고 양철
통을 인계했다.
준비가 얼추 끝나갈 무렵에 마을 사람들이
버스 세 대에 나눠 타고 왔다. 마치 소풍이라
도 나온 듯이 모두들 즐거워 보였다. 자리에
앉자 부녀회에서 사람고기가 든 탕을 나눠 주
기 시작했다.
정장(町長)이 나에게 대단히 수고했다며 한
마디 할 것을 권했다. 내가 스피커를 잡자 마
을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나는 들판에서 먹는 음식이라 즉석 샤브샤브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집에서 야채와 함께
고기를 아예 끓여 왔노라고 말했다. 사실은
고기는 소고기가 아니라 연한 개고기를 썼는
데 입맛에 맛을지 모르겠으나 양껏 먹어 주었
으면 더없는 영광으로 여기겠다고 겸허하게
인사말을 마쳤다. 일부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
작했으나, 나는 계속해서 말했다. 개고기는 맛
도 좋으며, 실재로 이웃나라 한국에서는 보약
처럼 개고기를 먹는다고 말했더니, 몇몇의 여
자들을 제외한 사람들은 개고기든 소고기든
맛만 좋으면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어떤 사람
은 자기가 한국에 갔을때 개고기를 먹어봤다
며, 그 약효를 설명하면서 음흉한 표정까지 지
었다. 이윽고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기 마을
사람들로 만든 사람 고깃국을 나누어 주었다.
내가 가져 간 사람고기는 대단한 인기였다.
130명 가까운 사람이 먹어서인지 양철통 스무
개가 금세 바닥이 났다.
나는 식사를 마친 뒤 돌아다니면 뼈를 수거
했다. 개들에게 좋은 먹이가 되니 빠짐없이 챙
겨 달라며 일일이 당부했다. 사람뼈를 함부러
굴렸다가 나중에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
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양철통을 들고 뼈를 수거하는데 한 사람이
개들은 개뼈를 먹느냐고 물어 보았다. 내가 거
짓말로 그렇다고 하자 모두들 와아하고 웃었다.
나는 속으로 웃는 이들을 경멸했다. 개만도
못한 인간들. 너희들은 사람고기를 먹지만 개
들은 절대로 자신들의 고기는 먹지 않아! 먹는
거라면 환장하는 족속들은 개가 아니라 바로
너희들이야!
나는 소리치고 싶은 욕구를 누르기 위해 안
간힘을 써야만 했다. 뼈를 한참 수거해 나가는
데 안경 쓴 청년이 뼈 하나를 들고 고개를 갸
웃거리고 있었다.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못 본 척 순서대로 뼈를
수거해 나갔다. 청년에게 다가가자 청년은 들
고 있던 뼈를 양철통에다 넣었다.
회식이 끝나자 마을 사람들이 일일이 찾아
와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는 인사를 했다. 어떤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먹어 보는 훌륭한
요리였다는 칭찬을 늘어놓기도 했다.
나는 겸손한 자세로 서서 그들의 인사에 답례를
했다. 마을에서 사라져 버린 마을 사람들을
마을로 다시 돌려 보낸 나의 천재성에 스스로
감탄하며. 마을 사람들은 즐거운 식사와 이
모임을 통해 서로의 불신을 깨끗히 날라간 듯이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이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2시간남짓 동안 500여명이 식인을 한 것이다.
그것도 자기 마을 사람을...
# 4월 2일
야외에서 회식이 있은 이후로 나를 대하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가 백팔십도 달라졌다. 그
들은 나를 싹싹하고 친절하게 대해 줬다. 지난
날의 멸시와 경멸어린 태도는 상상할 수도 없
을 정도였다. 퉁명스럽기만 하던 빵집 주인은
자신이 손수 만든 거라며 나에게 딸기잼을 주
었고, 한때 내가 호감을 느꼈던 제화점 집 딸
은 손수 수놓은 손수건을 선물했다.
나는 마을 사람들의 이중적 태도에 처음에
는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나는 마을을 드나들
면서 마을 사람들이 진정으로 나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어디를 가든지 예전에 보았던 요꼬의 크고
까만 눈처럼 생기 있는 눈들이 나를 반긴다.
그들은 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나
를 도와 주려 했고, 무슨 이야기든 나누고 싶
어 한다. 나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
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이
전처럼 싫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 4월 4일
요즘 들어서는 부쩍 사람고기 맛을 느낄 수
가 없다. 아니, 사람고기를 먹는다는 행위 자
체가 꺼려진다. 개들에게 사람고기를 던져 주
지만 예전처럼 개운하지가 않다.
이곳에서 홀로 떨어져 사는 생활이 싫다. 자
꾸만 마을로 가고 싶다. 마을 사람들 속에 앉
아서 이야기하고 이야기 듣고 싶다. 화제가 무
엇이든 간에.
내가 왜 이렇게 변했는지 모르겠다.
오늘은 마을로 나가서 가이쯔 상과 농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
간중간 아버지 생각이 났다. 어린시절 아버지
가 나에게 좀더 잘해 줬으면 참으로 좋았을 텐
데, 하는 생각이 수없이 들었다. 가이쯔 상이
헤어질 때 마당에 심으라며 꽃씨를 줬다. 채송
화와 맨드라미였다.
집으로 트럭을 몰고 오는데 까닭없이 눈물
이 흘러내렸다. 내가 왜 우는지, 아무리 생각
해도 알 수가 없었다. 눈도 안 아픈데 눈물은
왜 자꾸만 흘러내리는 것일까? 기분은 왜 이
렇게 엉망진창일까?
이제 사람의 고기 맛도 매일 먹는 밥과 다를
바 없고, 싱싱한 살을 날로 먹어도 그때만 상
쾌할 뿐이지 그저 그럴 뿐이었다. 그러나 아직
도 개들은 왕성한 식욕으로 인육을 탐할 뿐이
다. 인육에 대한 나의 탐닉이 시들해지자, 다
시 그 놈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고 싶은 마음도 없어 멍하니 식탁
에 앉아 있는데 그 놈이 나타났다. 그 놈은 나
에게 다시 피를 바치라고 요구한다. 내가 계속
해서 요구를 거절했더니 다시 무시무시한 모
습으로 변했다.
아, 솔직히 정면으로 바라보기조차 겁이 나
는 눈동자다. 하지만 나는 놈의 요구 조건을 들
어 주기 싫다. 이유는 없다. 그냥 싫을 뿐이다.
내가 버티자 그 놈은 요꼬를 바치라고 으르
릉거렸다. 식물인간처럼 변해 버린 요꼬를.
처음 그 놈이 나타났을 때처럼 내 주변에서
그 무시무시한 눈으로 나를 괴롭히는 것이었
다. 그 놈은 지하실에 있는 요꼬를 제물로 원
하는 듯 했다. 아마 요꼬에게도 나타나 괴롭힐
지도 모른다. 요즈음 요꼬는 거의 식물인간 수
준이다.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멍하고 앉아있
다가 가져다주는 음시만 먹는 것이었다.
그 놈은 아직도 나에게 더 요구하고 있는 것
이다.
# 4월 7일
그 놈의 실체가 느껴진다. 무섭고 끔찍한 기
운이.
내가 더 이상 놈의 두 눈에 굴복하지 않자
놈은 실체를 드러낼 듯이 어둠 속에서 꿈틀거
리고 있다.
아, 너무도 무섭다. 마을로 달아나고 싶다.
하지만 꼼짝도 할 수 없다. 놈이 나를 쉬지 않
고 지켜보고 있다. 놈의 두 눈을 정면으로 쳐
다본다면 나의 심장은 멎고야 말리라.
여기서 탈출하고 싶다.
# 4월 15일
그 놈은 원하고 있다. 피를. 더 이상 내가 제
물을 바치지 않는다면 놈은 나의 피를 거둬 가
리라.
놈의 두 눈은 이제 빨간 색에서 한층 더 진
한 색으로 바뀌어 있다. 지옥의 유황불 같은.
놈의 분노는 점점 커지고 있다. 솔직히 요즘
들어선 숨을 쉬는 것조차 버겁다. 이제 놈은
곧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리라. 끔찍한 실체를.
나의 최후가 멀지 않았다는 걸 느낄 수 있
다. 대기 속에 조만간 흘리게 될 나의 피냄새
가 느껴진다.
아, 무섭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크고 까만 눈을 보았
으면. 생기 있는 두 눈을 볼 수만 있다면 나의
마음이 한결 가벼울 텐데.
마쓰다 다까히로의 수기는 여기서 끝나 있
었다. 뒷장을 넘겨 보니 메모지가 한 장 끼워
져 있었다. 낯익은 윤석의 글씨였다.
마쓰다 다까히로는 마지막 수기를 쓴 지 이
틀 뒤인 4월 17일에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시
체로 발견되었대.
경찰은 한 의대생의 제보를 받고 출동했다
는 거야. 신고한 의대생은 이 수기에 나오는,
회식 때 뼈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던 그 젊은
이인 모양이야. 방학이라 집에 내려왔다가 우
연히 그 회식에 참가했다는 거야. 인체의 뼈
구조와 이름을 공부하고 있던 중이라 뼈가 나
와 습관적으로 살펴보았는데 사람의 엄지손가
락과 너무도 흡사했대. 그래서 그 뼈를 주머니
에 몰래 넣어 와 책에 나온 사진과 비교해 보
고, 교수님께 최종적으로 물어 뒤 확신하게 되
었대.
의대생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혹시나 해서
출동했는데 혹시나가 현실로 이어진 거지. 주
인이 죽어 있어 마쓰다 다까히로의 집을 수색
해 봤는대 경찰도 믿기 힘들 정도로 참혹했대.
뒷산에서 열한 구의 사람 머리가 발견되었
고, 하나는 도베르만 우리 속에서 썩고 있었
대. 그리고 수기에 등장했던 창고는 굉장하더
래. 인체를 유린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도구들
이 갖춰져 있어 보기에도 섬뜩 하더라는 거야.
지하실에 갇혀 있던 아주사 요꼬는 거의 140
여 일 만에 구출되었는데 거의 얼이 빠진 상태
여서 경찰도 못 알아 볼 정도였대. 곧바로 후
송되어 정신병원에서 여러 가지 치료를 받은
결과 상태가 많이 호전되었대. 하지만 그때 받
은 충격으로 지하실에서 있었던 일을 전혀 기
억하지 못한대. 자기가 수첩에 쓴 글마저도.
냉장고에 남아 있던 사람고기는 경찰이 유
전자 검사를 마친 뒤 가족에게 통보하지 않고
몰래 화장해 버렸대. 사람을 잘라서 냉장고에
넣어 두었더라는 소문이 퍼지면 국민들이 식
인(食人)에 대해 연상할 거라는 이유 때문이었지.
너도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마쓰다의 수
기 중에서 살인과 식인을 시작한 날부터의 기
록은 잉크가 아닌 희생자의 피로 쓰여진 거야.
수기에 묻은 피를 희생자들의 혈액과 대조해
봤는데 거의 일치하더래.
그리고 마지막 수기는 자기 피로 썼다는 거야.
그런데 이상한 것은 경찰에서 자살한 것으로
결론지은 마쓰다의 시체야. 마쓰다는 엽총을
이용해 자살을 했는데 아무래도 납득이 안가.
상식적인 엽총 자살은 턱 밑이나 입에 총
부리를 대고 방아쇠를 당기는 게 정상인데, 마
쓰다는 왼쪽 귀 밑에 총을 맞은 상태였대. 엽
총의 길이상 왼쪽 귀 밑에 대고는 자신의 팔로
방아쇠를 당길 수 없다는 거야.
그리고 부검한 결과 마쓰다의 심장이 완전
히 파열되어 있더라는 거야. 외상은 전혀 없는
데 마치 거대한 손으로 심장을 움켜쥔 것처럼
심장이 완전히 찌그러져 있었대.
경찰 또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정황이었
지만 국민의 동요를 막기 위해서 일단 자살 판
정을 내렸대. 경찰 측 주장은 타살이라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일단 자살로 판정한다는 거였어.
이 외에도 납득할 수 없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야. 마쓰다의 시체가 발견된 방 천장(높이
3미터 50)에서 손톱자국이 발견된 거야. 결국
은 마쓰다가 남긴 손톱자국으로 판정을 내렸
지만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 너
는 인간의 손톱으로 콘크리트 천장에 패일 정
도의 손톱자국을 낼 수가 있다고 보니?
그리고 더욱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수기에
등장하는‘그 놈’, 또는‘두 눈’의 존재야. 수
기를 읽은 경찰은 다른 공범이 있다고 보고 집
안을 샅샅이 뒤졌어. 그러나 마쓰다 외의 사람
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던 거야.
경찰은 여론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가 이
사건을 심령학회에 의뢰한 거야. 일본 경찰은
이 끔찍한 사건의 전모가 발표되면 국민들이
받을 충격이 엄청나다고 판단하고 사건을 축
소 조작한 거지. 알았든 몰랐든 130여 명이 단
체로 같은 마을 사람들을 먹었으니 이 사실이
밖으로 알려지면 어떻게 되겠어?
결국 이 사건은 한 정신병자의 연쇄 살인극
으로 막을 내렸지만 본격적인 수사는 이제부
터라고 봐. 일한아, 넌‘그 놈’을 어떻게 생각
하니?
윤석이의 메모까지 다 읽고 니서 시계를 보
았다. 새벽 세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어차피
잠자기는 글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엇에 이끌리듯 빨간 수첩을 들었다.
아주사 요꼬의 수기는 수기라기 보다도 낙서
에 가까웠다. 날짜 감각도 상실했는지 날짜도
쓰여져 있지 않았다. 수첩을 펼치는 순간, 나
약한 한 여자가 겪었을 엄청난 공포가 밀려 오
는 것 같아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잠시,
그녀가 하루빨리 의식을 되찾기를 기원한 뒤
에 수첩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처절한 생존
의 기록을.
(2부에서 계속)